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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이슈

눈물의 사죄 뒤에 숨겨진 마녀사냥의 잔혹함

by 그리부이옳옳 2025. 1. 11.
 
박성훈
직업
연극배우, 영화배우
소속
BH엔터테인먼트
사이트
공식사이트, 인스타그램

배우 박성훈이 드라마 폭군의 셰프에서 하차하며 눈물로 사죄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목격한 듯한 기분이 든다. 불법 영상도 아닌, 일본 상업 AV의 한 사진을 개인 SNS에 올렸을 뿐인데, 그는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한 사람이 수년간 쌓아온 커리어와 삶이 단 몇 시간 만에 무너지는 장면은 안타깝고 충격적이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날카롭고 잔인한 사회가 되었을까?


법과 윤리의 경계에서 무너진 배우

우선, 이번 사안은 불법 영상이나 범죄와 관련된 것이 아니다. 일본 상업 AV는 합법적으로 제작되고 판매되는 콘텐츠이며, 그의 행동이 법적으로 위반된 것은 없었다. 그러나 도덕적 잣대를 들이댄 대중은 그를 몰아붙였다. 박성훈은 무거운 비난을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드라마에서 하차하고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물론, 대중의 시선에 민감한 공인이기에 논란이 일어난 것을 간과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의 행위가 과연 커리어를 박탈당할 만큼의 중대한 잘못인가? 한 장의 사진이, 그가 배우로서 보여주었던 수많은 노력과 연기를 한순간에 지워버릴 만큼 무거운 죄인가? 지금의 상황은 법과 윤리의 경계를 넘어, 감정적 판단과 여론몰이가 한 사람을 파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마녀사냥의 위험성

이번 사건은 단순히 박성훈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쉽게 "마녀사냥"이라는 폭력적 도구를 꺼내드는지를 보여준다. 인터넷과 SNS가 보편화된 시대에, 대중은 누구나 심판자가 될 수 있다. 익명의 무리 속에서 우리는 누군가의 잘못을 부풀리고, 판단을 내리고, 처벌을 요구한다. 그것이 법적 근거를 가지든 아니든 상관없다. 대중의 분노가 정당성을 가진 듯 포장되면, 그 대상은 곧 사회적 죽음을 맞는다.

박성훈은 이번 사건의 희생양일 뿐이다. 과거에도 비슷한 사례는 수없이 반복되었다. 불법적인 행위와 무관한 사소한 행동조차도 여론의 폭격을 맞아 누군가는 커리어를 잃었고, 때로는 생명까지 잃는 비극이 있었다. 우리 사회의 이런 비판 문화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잘못된 행동을 지적하는 것과, 마녀사냥식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리는 것은 분명히 다른 문제다.


상업 콘텐츠와 왜곡된 도덕성

박성훈이 올린 것은 상업 AV의 한 사진이다. 이는 특정 문화권에서 합법적이고 정상적으로 소비되는 콘텐츠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를 문제 삼는가? 일본 상업 AV는 수많은 사람들이 소비하는 문화 상품이다. 이를 문제 삼는 것은 과연 정당한가, 아니면 우리가 지닌 왜곡된 도덕성의 반영인가?

공인이니 더 조심했어야 한다는 지적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올린 사진 한 장이 정말 대중에게 얼마나 큰 악영향을 끼쳤는가? 우리는 때때로 과도한 도덕적 우위를 내세워, 개인의 실수를 집단적으로 짓밟는 잔혹한 태도를 보인다. 이런 태도는 실수를 저지른 사람에게 개선의 기회를 주는 대신, 그를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우리가 바라는 사회는 무엇인가

박성훈의 하차와 사과는 단순히 그 개인의 불운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이는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실수를 했을 때 이를 비판하고 개선을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비판이 과연 건설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지금의 대중은 마치 "비난할 대상"을 찾는 데 혈안이 된 듯하다. 잘못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과, 그 사람의 인생 전부를 부정하며 끝없는 비난을 퍼붓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만약 박성훈이 이번 사건으로 인해 커리어를 잃고, 대중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면, 우리는 또다시 한 사람을 희생시키는 데 가담한 셈이다. 대중은 쉽게 잊겠지만, 그 당사자는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우리 사회는 이런 비극을 얼마나 더 반복해야 깨달을 수 있을까?


변화가 필요한 비판 문화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가 비판과 응징의 경계에서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박성훈이 사진 한 장으로 모든 것을 잃었다면, 이는 그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우리가 가진 "여론의 폭력성"에 더 큰 책임이 있다. 마녀사냥은 정의를 추구하는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단지 한 사람의 실수를 빌미로 우리의 분노를 발산하는 폭력일 뿐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단순히 누군가를 벌하는 사회가 아니다. 실수를 용납하고, 그 실수를 통해 성장할 기회를 주며, 공정하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판단하는 성숙한 사회다. 박성훈의 사건은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로 남을 것이다.